#1

수평적 시선의 흐름은 수직의 힘을 받치는 시간의 누적이다. 이것은 시간이 되고 역사가 되고 삶의 지근거림이 되어 단단함을 이룬다.

또한 이것은 팽팽한 긴장감을 가지며 알수 없는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의 능수능난함을 내포한다.

바라보는 시선은 대상이 갖는 즉물성보다 그것을 담고 있는 그림자나 그늘을 더 주시한다.

무엇을 읽어내는 정보보다 정보를 문제 삼아 더 의문하고 예측하고, 불안한 의미의 범주를 넘어서려는 의지 때문이다.

왜 산이었을까. 왜 남산이었을까.

그것은 떠받친 시간의 근간이며 가장 가까운 누적된 피로의 현상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앓고 있으나 움직일 수 없는, 그러나 가장 무서운 형벌로 우리에게 돌아설 수 있는 신적 영역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2

예리하고 부드럽게 쌓았던 수평적 시선을 평평하게 수직적으로 나눈다,

수평의 시간들을 수직적으로 잘라버려 시간을 분절 시킨다, 분절된 시간들은 대상의 외피를 벗겨버리고 숨어있던 단면의 시간들을 거꾸로 흐르게 한다.

시선의 구부러짐은 지금이 아닌 내포된 그리고 다가올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는 기류와 맞닿을 수 있다.

극점에 도달한 평형상태의 힘의 균형점은 증명할 수 없는 곳으로 향할 준비를 갖추고 고요하고 차가운 기류를 형성한다. 기류의 움직임들을 마주한 산들의 풍경은 구부러진 시선과 단면의 시간 속에서 어느 지점도 갖을 수 없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 각자의 시선에서만 남겨지고 예측되고 의심 될 뿐이다.

 

#3

어느샌가 난 알수 없는 시간 속에 와 있다. 그리고 알수 없는 지점에 서 있다.

어느 누구도 보이지 않고 어느 누구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살고 있던 골목과 집과 얼마전 시끄럽게 괴물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만들어진 산을 뚫어버린 도로와 반짝반짝 빛나던 조명과 간판들 조차 냉랭하게 서 있다. 누군가 안에 살고 있는지 알수 없다.

침묵하고 있는 것인지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이미 지나간 것인지 단지 고요하다. 그리고 불안의 평화가 있다.

 

의심의 끄나풀은 규정짓지 않는 다가올 또다른 그림자다. 아니 쫌쫌한 그물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