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이 작가론 - 흔들리는 눈으로 바라본 풍경

 

임선이는 2000년대 이후 인간의 흔들리고 불안한 시선과 그러한 시선이 인식하고 지각하는 독특한 풍경 이미지를 사진과 오브제 등을 통해 표상해왔다. 자신의 실존적 삶에서 경험한 수많은 삶의 음영들을 시각에 체화하고 이러한 육화된 시선을 다시 대상에 투영하면서 임선이의 작업은 작가 주체-체화된 시각-이미지 풍경이라는 유기적 구도를 견지한다.

그 결과 임선이의 작업에는 인간 삶의 구조와 의미들이 적극적으로 내재화되어 있다. 초기 작업이라 할 수 있는 <도시의 은신처 Shelter>(2003)에서 작가는 회색으로 응고된 시멘트 선인장 오브제들을 통해 외부로부터 스스로를 의도적으로 단절시켜 사적 공간 내에 은신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소외와 고립감을 의미화 한 바 있다. 이러한 닫힘과 은폐의 수사는 2005년 개인전 ‘갇힌-섬’으로 연장되는데, <Shelter- seascape>, <적층>, <섬의 그늘> 등에서 섬의 형상으로 커팅된 각각의 모델링은 네트워킹으로 직조된 공간 속에 존재하지만 타자와의 소통의 부재로 인해 느끼는 도시인의 내적 소외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어디에도 정박하지 못하고 망망대해를 부유하는 섬의 모습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로를 응시, 견제하며 마치 개별적인 섬으로 존속하는 인간 개체들과 닮아있다.

임선이의 비교적 최근 작업인 <그들만의 세상을 기념하며>(2009)에서 역시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의 일상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몸을 한껏 움츠린 채 주위를 배회하는 검은색 고양이들의 모습을 브론즈 오브제로 제시한 이 작품에서는 주류에서 밀려나 ‘그들만의 세상’을 살아가는 소수자의 모습이 중첩되어 있다. 그러나 <도시의 은신처>과 일련의 ‘갇힌-섬’ 시리즈, 그리고 <그들만의 세상을 기념하며>등을 비롯하여 일련의 임선이 작업이 의미화 하는 지점은 소수자나 특정 인물의 실존적 삶이 아니라 소외와 결핍으로서의 인간 주체성의 근원적 차원이라 할 수 있다. 정신분석에서 주체가 형성되는 기본적인 구조가 오인에 기초한 허구이고 따라서 인간 주체는 자신의 존재와 결코 직접 만날 수 없다고 할 때, 인간이란 이미 소외의 경로를 따라 형성되기 때문이다.

임선이 작업의 또 다른 특이점은 불확실하고 가변적인 시각, 지각적 진리의 모호함, 그것이 상기하는 불안정한 인간주체를 작품의 층위에서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2009년부터 2011년 사이에 제작된 <흔들리는 눈들 Trembling Eyes>, <어려운 눈 Difficult Eye>, <혼돈된 시선>등의 사진작업이 대표적인 예이다. <흔들리는 눈들>에서 작가는 하나의 대상을 10도씩 돌려서 360도 회전하며 찍은 상들을 수많은 레이어들로 겹쳐 명확하지 않은 모호한 형상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작업방식으로 인해 정물의 이미지는 확실히 규정되지 못한 비결정적인 윤곽선으로 끊임없이 요동친다. 붉은 색과 초록색, 그리고 갈색의 꽃과 잎과 뿌리의 이미지는 제자리에 고정되지 못한 채 미세하게 흔들려 존재의 불확실성을 드러낸다. 흔들리는 면들이 중첩되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하나의 시간대와 또 다른 시간대가 서로 공존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임선이의 이러한 작업들은 지각의 과정이 완결되지 않은 채 계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하나의 응시가 미완의 인식일 수 있다’라는 작가의 발언처럼 일련의 ‘흔들리는 눈’ 사진 시리즈는 임선이가 대상을 바라보는 지각의 확실성에 대해 의문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에게 ‘흔들리는 눈’, ‘어려운 눈’은 바로 단순한 확실성 보다는 지각적 진리의 모호함을 선택하고 지각적 확실성에 대해 고민과 회의를 거듭한 세잔의 ‘회의의 눈’을 연상시킨다. 메를로 퐁티가 세잔의 작업에서 카메라를 통한 사진의 지각과 구별되는 육화된 시각(embodied eye), 우리가 실제로 지각하게 되는 체험된 시각을 간파하였듯이, 임선이가 명명한 흔들리는 눈으로 포착한 대상은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 주체의 눈에 이미지들이 지각되는 실제 과정과 방식에 관한 것일 수 있다. 끊임없이 생성되고 요동치는 세상을 결코 시각적으로 통제 할 수 없듯이, 작가에게 있어 본다는 지각 행위는 흔들리는 눈으로 본 것과 같은, 결코 확실성을 가질 수 없는 것,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는 꽃이라는 대상을 화면에 이미지화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꽃 자체가 작가의 눈에 들어오는 과정, 그것이 생성되고 움직이는 상태를 제시하려 한 것이다. 이러한 모호함, 규정되지 못하는 불명확성, 결과가 아닌 과정중의 주체, 완결이 아닌 기술의 과정 등이 임선이 작업을 관통하는 지점이며 그의 작업을 열려진 풍경으로 바라보게 하는 동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임선이가 주목하는 모호함은 그의 언급처럼, 부정이 아닌 진실에 더 다가선 열려진 문이다.

이러한 생성되는 과정으로서의 풍경, 모호한 지각, 흔들리는 눈에 의한 드로잉은 2007년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설치와 사진 시리즈인 <부조리한 풍경-Trifocal Sight>의 핵심이다. 임선이 작업의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서울에 위치한 인왕산에서 출발한다. 작가가 수많은 풍경 중 인왕산을 선택한 것은 서울의 대표적인 산으로서, 대중매체나 옛 화가의 그림에 의해 머리로 익히 알고 있었던 인왕산과 거리에서 무심결에 올려다 본 인왕산 사이의 인식의 간극, 즉 사유와 지각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성에 근거한 것이다.

인왕산에 대한 작가의 예술적 탐구는 지형도 오리기에서 출발한 ‘부조리한 여행’으로 명명된다. 작가가 인왕산에 접근하는 방식은 실경을 관망하는 것도 인왕산을 신체로 거닐며 실질적으로 체험하고 탐사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인왕산 전체를 숫자적으로 요약한 수천장의 지형도를 이리저리 탐색하고 이를 오리고 하나하나 쌓아가는 것으로 이루어진 소극적 탐사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자면 이는 여행이라는 어법에 맞지 않는 실로 ‘부조리한 여행’인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인왕산을 향한 작가의 ‘부조리한 여행’에 동참해 보자. 작가는 수천장의 인왕산 지형도를 등고선을 따라 오려내는데, 그 결과 오려낸 구멍 모양의 종이와, 구멍 뚫린 종이의 두 종류로 분리된다. 수천장의 지형도를 같은 방식으로 오려내고 두 가지 종류의 종이를 층층이 겹치다보면, 하나는 수천장의 종이 덩어리로 쌓아올려진 3차원의 인왕산의 모형으로 변화되고, 또 하나는 거대한 협곡과도 같은 움푹 파진 음각의 인왕산 모형 오브제로 만들어진다. <붉은 눈으로 바라본 산수>라는 이름이 붙여지기도 한 이 두 종류의 오브제들은 인왕산의 음과 양, 실재와 그림자, 존재와 부재, 상승운동과 하강운동의 두 얼굴을 내포한다. 작가가 명명한 ‘붉은 눈’은 바로 충혈된 눈, 흔들리는 눈, 다 초점의 눈인데, <흔들리는 눈> 시리즈가 시간대가 상이한 꽃병의 서로 다른 층위를 오버랩하여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은 것을 한 화면에 중첩시켰듯이, <붉은 눈으로 바라본 산수>는 인왕산의 표피적인 외양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배후의 그림자의 형상을 중첩시켜 놓은 것과도 같다. 음형의 산의 모습에서 중첩된 부분들은 산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겹겹이 쌓여온 시간의 흐름과 역사적 과정을 가시화한다. 더구나 층층이 겹쳐져 있는 섬세한 레이어들은 촉각적 지각을 불러일으키고, 산의 부분 부분을 시각적으로 면밀히 훑어가도록 유도한다.

인왕산을 중심으로 한 ‘부조리한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인왕산의 음형 산수 풍경이 사진으로 전이되는 <3초점의 시선 Trifocal Sight>에서이다. 작가는 인왕산 모형을 카메라를 통해 근경, 중경, 원경의 세 초점의 시선으로 잡아내어 음형의 인왕산 모형에서 완전한 형태변이를 이루어 내는 새로운 풍경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인공조명을 사용하여 드라마틱한 명암 효과를 준 결과 사진으로 변이된 인왕산의 모형은 움푹 파진 웅덩이나 거대한 협곡이 되기도 하고, 오래된 지층이나 수천 년 된 동굴 내부로 변화하기도 하며, 오랜 시간이 축적된 고고학적 발굴의 현장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수천 수만 배를 축소한 인왕산 지형도에서 출발한 모형 오브제이지만 사진으로 변이되면서 시각적으로 인식되는 규모는 더없이 확대되고 깊이감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더해진다. 실제 인왕산에서 지형도로, 산의 모형에서 사진으로 변증법적 변화를 거듭하면서 원본과는 동떨어진, 이치에 맞지 않고 비합리적인, 실로 ‘부조리한 풍경’이 탄생하는 것이다.

‘부조리하다’ 함은 상징적 어법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조리한 풍경은 시각예술의 표상의 차원에서 말하지만, 상징계적 시선, 사유(思惟)로서의 시선으로 바라본 풍경이 아님을 의미한다. 즉 대상 세계와 자신을 분리하는 가운데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고 통제를 시도하는 원근법적 시선으로 바라본 풍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근법적 시선이 초월적 주체를 상정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동일한 시각, 추상화된 시선이라면, 임선이가 외부 대상과 풍경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의 작업세계를 관통하는 ‘Trifocal Sight' '흔들리는 시선,’ ‘어려운 시선’이다. 즉 사물과 세계를 대상화하고 지배하고 소유하는 시선이 아니라 신체적 경험과 결부된 체험되고 육화된 시선이며 자신의 감각의 혼란을 받아들이는 열린 시선이다. 이는 머리에서 미리 지정된 고착화된 시각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 경험과 변화하는 삶의 양태들을 모두 포함한, 시시각각 변화하는 간(間) 시선이다. 이러한 시선으로 바라본 풍경과 대상은 하나의 개별화된 덩어리나 윤곽이 아니라 그 속의 다양한 여러 질적 차이들과 변수, 변화하는 양태로서 드러난다. <흔들리는 시각들>이나 <어려운 시각>에서 미세하게 요동하는 정물이미지, <부조리한 풍경-Trifocal Sight>에서 수많은 레이어들로 중첩된 인왕산 풍경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형태들이 시간의 과정과 흐름 속에서 계속적으로 변해가는 추이를 보여주는 것도 바로 이러한 시선 때문이다.

임선이 작업은 인간의 근원적인 소외와 결여를 내면화하고, 개인적 사회적 의미가 개입된 흔들리는 시선을 통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 그의 작업은 산과 꽃과 같은 대상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지각되지 않지만 존재하는 미세한 움직임, 그 내부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고 ‘생성’되는 ‘과정’으로서의 모습에 주목한다. 작가는 실재계의 그것과도 같이 모호하고 이해될 수 없고 부조리 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그 무엇을 작업을 통해 보여 주고자 한다. 임선이의 열린 풍경에 끌리게 되는 것은 완결적이지 않고 상실과 소외, 끊임없는 흔들림과 동요를 내포한 우리의 모습, 우리의 시선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배명지 _ 코리아나미술관 책임 큐레이터

1972년 출생.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주요 전시로는 <Show Me Your Hair>, <Featuring Cinema>, <Artist's Body>, <Cross Animate>등이 있다. 2006년 책임 기획한 <이미지 극장>전이 ‘올해의 예술상’(코리아나미술관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을 수상하였다. 현재 코리아나미술관 책임 큐레이터로 재직중이다.